조선시대 CSI? – 조선시대의 검시법

안녕하세요! 다들 미드 CSI시리즈에 대해서 알고 계시 나요? 저는 이런 과학 수사물들을 매우 좋아하는데요, 이번주에는 이러한 법의학, 과학 수사가 현대에만 존재했던 것이 아님을 역사 속을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고자 합니다.


조선시대 법의학서

조선시대에는 사법기관이 따로 있지 않아서 지방의 수령이 사법 업무까지 담당했기 때문에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반드시 수령이 직접 수사하고 검시1)를 해야 했다고 해요. 전문적 지식을 갖춘 수사관, 검시관들이 아닌 사대부 출신의 지방 수령들은 살인 사건을 조사 하기 위해서는 수사 지침서, 법의학서를 참고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럼 먼저 조선시대의 법의학서에는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시기별로 어떤 법의학서가 대표적으로 쓰였는지에 대해 알아볼까요?

무원록

중국 원나라 왕여가 송나라의 형사사건 지침서들을 바탕으로 만든 수사 지침서, 혹은 법의학 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무원록>에는 살인사건의 원인을 찾아내기 위한 법의학적 각종 기록과 검사 재료, 서식 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신주무원록

세종 때, 무원록에 주석을 붙이고 내용을 덧붙여 조선의 상황에 맞게 활용도면에서 개정한 법의학서 입니다.

증수무원록

영조 때, 신주무원록에서 내용을 추가하고, 애매한 용어를 바로잡은 뒤 해석을 붙여 새로 개정한 법의학서 입니다. 이후 정조의 명에 의해 증수무원록을 한글로 다시 쓰며 어려운 말은 주석을 달아서 ‘증수무원록언해’를 편찬했다고 합니다.

심리록

영조와 정조때의 조선시대 살인사건 재판 결과를 상세하게 다룬 책으로, 실제 판례를 중심으로 분류하고 정리한 판례집이라고 합니다. 정조 때 편찬된 이 책은 범죄 발생과 수사, 검시 단계 및 재판의 전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검시관 & 검시물품

위의 글에서 조선시대는 사법기관이 따로 존재하지 않아, 고을의 수령이 직접 살인 사건을 수사했다고 언급했는데요, 그렇다면 지체 높은 사대부들이 직접 시신의 옷을 벗기거나 몸을 만지는 등의 일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무원록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고을의 수령, 사리, 의율, 향인, 오작사령(시체검안 관노비)등 팀을 이루어서 현장으로 출동한다고 해요.
여기서 고을의 수령은 수사를 총괄하고 보고서를 써서 상부에 보고하는 일을 담당하는 검시의 책임자를 맡고 있었는데요, 사실상 검시의 실질적인 일들은 수령을 보좌하는 아전들이 담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리는 일반적인 아전들을, 향인은 심부름을 하거나 경비를 맡은 자들을, 의율을 특수 기능직 아전으로 의학에 능숙한 의생(의원), 법률에 능한 율생을 말하는데, 이들은 검시관에게 사망원인과 관련하여 의학적, 법률적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마지막으로 ‘오작사령’은 아전들 중에서 제일 천한 부류에 속하는데요, 이들은 검시뿐만 아니라 시신의 매장까지 시신을 직접 만지는 일들을 모두 맡았다고 합니다.


검시를 할 때, 죽음의 원인을 파악할 때 눈으로만 보면 한계가 있기 때문에 여러 약품과 같이 했을 때 어떻게 변하는지 살펴보는데요 이때 사용되는 여러 약품과 도구들을 ‘응용법물’이라고 합니다. 응용법물에는 술찌꺼기, 식초, 파, 매실, 감초, 흙, 망치, 백반, 거적자리, 은비녀 등 매우 다양하게 존재하며 시신의 세척부터 시작하여 사용된 흉기를 찾아보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응용법물 중에서도 ‘식초’는 매우 다양하게 쓰였다고 해요. 시신의 상태를 조사하기 전에 술찌꺼기와 식초를 시신에 씌우고 옷으로 덮은 다음 끓인 술과 식초를 부으면, 시신이 부드러워져서 훼손되어 잘 보이지 않던 상처들이 위로 올라와 잘 보인다고 합니다. 또한 식초는 현대 법의학에서 ‘루미놀’의 역할도 했다고 해요. 핏자국이 없지만 범행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의심이 가는 흉기가 있을 때, 그 위에 강한 식초(고초)를 바르면 핏자국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시신 검시 과정

조선시대에는 원통한 사람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살인사건과 같이 인명이 관련된 사건에서는 사건을 조사하는 단계가 매우 복잡하며 이를 철저하게 수행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하는데요 그러한 단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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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 접수

    살인사건이 발생하여 관에 신고가 들어오면 사망 장소에 해당하는 수령은 아전들을 데리고 가서 검험 절차를 주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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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진술

    목격자, 피의자, 이웃사람들 등을 심문하는데 이때 범행동기, 진행상황, 원인유무 등을 조사하면서 피해자의 건강상태, 원래부터 있던 상처의 유무 등을 확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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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검(1차 검험2))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한 검시가 이루어지는데, 시체의 머리부터 시작해서 신장과 얼굴 빛깔, 피부의 손상 여부 등 총 76개의 신체부위를 상세히 살펴보고 모두 그림으로 기록하였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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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진술

    첫번째 검시가 끝나고 다시 한번 피해자 주변 사람들에게 진술들을 받습니다. 만약 진술 내용이 1차때와 일치하지 않으면, 3차, 4차 까지 받을 수 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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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검(2차 검험)

    복검 역시 초검과 동일한 방법으로 진행하는데요, 그래도 사망 원인이 애매하거나 밝혀지지 않으면 3차 이상의 검시를 거쳤으며 최대 5번 검시를 시행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복검 때에는 이를 행하는 수사관이 초검 내용에 대해 일체 알 수 없도록 하여 혹시 모를 비리를 예방했다고 해요.

<인체도> : 조선시대에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검시를 하여 시장을 작성했는데, 위의 인체도를 보고 인체의 여러 부위를 살펴서 시형도를 만들었어요.


사망 원인 찾기

살인사건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1. 사망원인 2. 관련자 진술을 통한 정황 파악 이 두가지 라고 할 수 있는데요, 조선시대때는 특히 ‘사망원인’파악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시체의 색을 통한 사인 찾기

간단히 시신의 몸과 얼굴의 빛깔을 통해서 사망 원인을 추측 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방법은 과학적이면서도 실용적이기 때문에 현대 법의학에서도 자주 쓰이고 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법의학서 ‘신주무원록’에 따르면, 시신이 파란색을 띠면 독살 혹은 질식사, 노란빛을 띠면 병사, 검은색이면 시신이 부패한 것, 붉은색을 띠면 맞아 죽은 것으로 판단했는데요, 드물게 흰색을 띠는 시신이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살해 후 목이 매달린 것으로 추정되며 자살로 위장한 경우일 가능성이 크다고 해요.

독극물 사망인 경우

  • 입술, 혀가 문드러져 있으며 손톱은 푸른색, 입은 검은색 빛을 띰 또한 푸른 상흔이 온 몸에서 규칙적으로 나타남
  • 독살 확인 방법
    1. 은비녀법
      조선시대의 경우 대부분 은비녀에 의지하여 독을 판별했는데요, 이는 조선 특유의 수사기법으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조선에서 사용되는 대부분의 독은 ‘비상’이라고 해요. 비상의 황과 은비녀의 은이 결합하면 검게 변하기 때문에 시신의 목구멍에 은비녀를 넣었다 꺼냈을 때 색이 푸르거나 검은 빛을 띠면 독살로 판단하였다고 합니다.
    2. 반계법
      흰 밥 한 덩이를 죽은 사람의 목구멍 속으로 집어넣고 종이로 덮은 후 한 두시간이 지나면 밥을 꺼내 닭에게 먹이는 방법인데요, 이때 만약 닭이 죽게 되면 이를 독살로 판단했다고 합니다. 독살을 판단하는 확실한 방법 중 하나이지만, 독에 중독된 닭을 백성들이 먹고 죽은 사고가 발생하여, 이 방법은 영조 때 금지되었다고 합니다.
      현대 독물과 관련된 법의학에서도, 중독사에 따른 원인 물질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라고 해요, 그래서 오늘날에 있어서도 부검 도중에 시신의 위 내용물을 실험 쥐에게 먹여 실험한다고 합니다.

물에 빠져 죽은 경우

  • 물에 빠져 죽은 경우에는 입과 코 안에서 흰 물거품이 나옴
  • 남자는 양기가 얼굴로 모이므로 얼굴이 무거워 익사하면 반드시 엎드리게 되고, 여자는 음기가 등에 모이므로 등이 무거워 익사하면 반드시 드러눕게 됨.
    시신의 자세와 관련해서는 대개 머리와 팔다리는 부피에 비해 뼈가 차지하는 부분이 커서 비중이 높기 때문에 시신이 물속에 있었다면, 남녀 여부에 관계없이 머리와 팔다리가 아래로 늘어져 엎드린 형태로 발견되기 때문에 신주무원록의 판단은 옳지 않다고 합니다.
  • 두개골에 구멍을 뚫어 정수리에 따뜻한 물을 가늘게 부은 후 콧구멍에서 고운 진흙과 모래가 나오면 살아 있을 때 물에 던져진 것이고, 나오지 않으면 죽은 후에 던져진 것.

예리한 도구에 살해된 경우

  • 칼날 등의 예리한 도구에 의해 살해된 경우 상처 주변의 피부 및 살에 피가 묻어 있고, 내막이 뚫렸으며, 살이 넓게 벌어지고, 근육의 결이 밖으로 나와 있으며 손가락으로 집으면 선홍색 피가 나옴
  • 죽은 후 칼날로 베어 손상을 입힌 경우라면 건조하고 희며, 피가 없고, 손으로 누르면 맑은 물이 나옴.
  • 시간이 많이 지나 살인한 흉기를 판별하기 어려운 경우, 의심이 가는 흉기를 숯불에 달구어 강한 식초(고초)로 씻으면 피의 흔적이 나타남

자할사한 경우(스스로 목을 찌른 경우)

  • 시체가 입을 다물고, 눈도 감고, 두 손을 꽉 쥐고, 살색은 노란빛을 띠고, 머리카락이 모여 있는 목덜미에 상처 자국이 하나 있다면, 기도와 식도를 끊은 것.
  • 죽은 사람이 스스로 목을 찔렀을 때는 힘이 넘쳐서 양손에 상처가 나는데, 그 상처의 크기가 같지는 않다.


지금까지 조선시대 과학 수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물론 가끔 단계가 생략 되거나 지금의 과학적 견해에 비추어 보았을 때 타당한 근거가 없는 등 시대적인 한계도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 수사관들은 과학적으로 살해의 증거를 통해 수사를 진행하였으며, 검시 전과 후에 피고 및 주변 인물들에게 확인시켜 서명을 하도록 하고, 처음 검시관은 복검할 때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등, 검시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구체적인 절차까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고 해요.

또한 조선시대에는 살인 사건처럼 인명이 관련된 사건이 경우 함부로 조사를 끝내거나 소홀히 다루지 않았는데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법의학서 ‘무원록’은 ‘원통하지 않게 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인정’이 통치의 기본이 되었던 조선에서는 원통한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의문이나 의혹을 남김없이 풀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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