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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에서도 백성을 생각하다 – 조선시대 수라상

안녕하세요 한국사를 사랑하시는 여러분

이번 시간에는 밝고 재밌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해요. 그래서 준비한 주제는 바로

임금님의 수라상입니다.

 

먼저 수라의 유래부터 알아볼까요? 수라는 순우리말이 아닌 몽골어로 ‘음식’라는 뜻을 가진 ‘슐라’라는 단어에서 유래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왕실 한정으로 사용되는 극존칭어로 단어가 변해 지금의 수라상이라는 단어가 탄생했다고 합니다. 고려말엽, 원나라의 간섭이 끼친 영향이 조선시대 궁중까지 미쳤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수라는 우리가 보통 12첩반상으로 알고 있는데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12첩 반상은 대한제국이 성립된 직후부터 였고, 조선시대에는 9첩 반상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번 시간에는 우리가 흔히 아는 12첩 반상을 기준으로 설명해 드릴려고 합니다.(첩: 밥, 국, 김치, 장을 기본으로 추가 되는 반찬의 수)

수라상 12첩
양반가 7~9첩
중산층 양인 5첩
서민 1~3첩

수라상의 구성은 현재 우리가 먹는 한정식처럼 코스요리나 또는 한상에 모두 나오는 형태가 아니라 크게 3개의 상으로 차려져 나왔습니다.. 먼저 가장 주된 상이라고 할 수 있는 대원반에는 백반(흰쌀밥)과 국, 조치(찌개), 각종 장류와 김치, 반찬, 토구(생선가시나 발라낸 뼈를 담는 그릇)가 올라가고 곁반에는 홍반(팥물로 지은 밥), 곰국, 숭늉이 올라가며 책상반에는 전골, 장국, 고기, 참기름, 계란, 채소 등이 올라왔습니다.

 

당시 일반 백성들은 3첩만 되도 균형적인 영양섭취가 가능하였을 정도로 반찬의 가짓수 1첩이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많았고, 대부분 절인 채소와 잡곡밥 등,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상대적으로 균형적인 영양섭취에서는 빈약한 수준이었으니 수라상이 얼마나 ‘상다리가 부러진다’는 표현이 어울리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많은 반찬들은 중복되는 재료 없이 모두 전국각지에서 진상되는 토산물들로 요리하여 냈습니다. 대표적인 토산물에는 전복, 숭어, 굴, 감, 밤, 감귤, 쇠고기 등 이외에도 진귀한 해산물이나 계절별로 맛볼 수 있는 과일과 채소도 올라갔다고 합니다. 지금에도 다 귀한 식재료들이죠. 그런데 여기에는 숨겨진 뜻이 있습니다. 흉년이나 각종 재난으로 토산물의 진상이 힘들면 해당지역의 토산물로 만든 반찬을 제외시킴으로써 왕이 쉽게 해당지역의 어려움을 알아채릴 수 있도록한 조치였습니다. 또한 이 수라상은 나라에 재앙이나 전쟁, 흉년이 들었을 경우 감선이라고하여 왕이 몸소 가짓수를 줄이거나 기름진 반찬을 제외시키도 했습니다.

왕들의 식성에 따라서 수라의 요리도 바뀌었는데, 고기를 좋아하던 세종은 항상 수라에 고기반찬이 빠지지 않았고 근검절약을 실천하던 영조는 반대로 기름진 음식 대신 채소위주로 식단을 짜고 가짓수를 크게 줄였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다양한 재료와 뜻을 담아 만드는 수라는 그럼 누가 만들까요? 과거 드라마 ‘대장금’이 공전절후의 인기를 누리면서 궁녀들이 음식을 만드는 것으로 많이 알고 있는데 실은 남자들이 만들었습니다. 허영만의 만화 ‘식객’에도 등장했던 바로 ‘대령숙수’라는 남자 요리사들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궁녀들은 보통 왕의 간식이나 숙수들이 퇴근하고 부재중인 야간 시에 급한 주안상 차릴 때 요리를 했다고 합니다. 식사 시에도 기미상궁과 수라상궁이 옆에서 식사를 보조해줬는데, 이중 기미상궁은 왕이 식사를 하기전에 먼저 먹어보고 독의 여부를 판단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왕실의 요리를 전담하는 행정부서는 사옹원이라는 관청으로 이곳에 수라를 만드는 수랏간이 속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옹원은 왕실에서 사용하는 반상기의 제작과 관리까지 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상당히 크고 그만큼 왕의 식생활이 매우 중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랏간에서는 오로지 왕실의 행사나 수라를 위해서만 요리를 할 수 있었고 그 외에는 일체의 요리를 해서 궁녀나 숙수들이 먹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보통은 임금이 먹고 남긴 음식을 먹었다는데, 지금의 현대인들 관점에서는 굉장히 좋지않는 광경이지만 당시에는 윗사람이 밥을 남겨 아랫사람에게 주는 것을 덕을 베푼다고 생각했고 아랫사람을 그것을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영화 ‘광해’를 보면 주인공이 수라를 다 먹어버리자 궁녀들이 굶는 장면이 나오는 겁니다.

   

 

 

이렇게 속사정이 복잡하고 또 화려한 수라를 매끼니마다 먹었을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보통 왕의 식생활은 먼저 오전 5시경 기상 직후 초조반상이라 하여 죽이나 미음등으로 먼저 속을 달랩니다. 그리고 오전 10시경에 12첩 반상의 수라를 받고, 오후 12시에서 1시경에 낮것이라고 하여 국수류나 떡을 먹었고 오후 3~4시경에 다시 12첩 반상의 수라를 받았습니다. 또한 조선시대 왕은 늦은밤까지 야근이 잦은 경우가 많고 사람을 만나는 일도 많다보니 밤에도 필요 시 주안상을 들이거나 야참을 먹었다고 합니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수라는 하루에 2끼니를 먹은거 였죠.

 

지금까지 살펴본 수라상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단순한 화려함? 아니면 전통요리로써의 가치? 제가 생각했을 때는 수라의 진정한 의미는 인간의 가장 기본욕구인 식욕을 충족하는 그 순간까지도 오로지 백성을 생각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왕 개인에게는 어찌보면 가혹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 왕이라는 존재가 단순한 지배자가 아닌 만인을 위하여 있는 존재라는 것을 밥먹는 순간까지 잊어서는 안된다는 걸 이 수라를 통해서 다시 한번 되새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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