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형벌 제도

사극을 보면 다양한 형벌들이 존재하는데요, 우리가 자주 보는 형벌 장면에는 사실 오류가 존재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이번에 조선시대의 형벌제도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조선시대 형벌제도는 고려의 형벌제도인 태형, 장형, 도형, 유형, 사형의 5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모두 알다시피 조선은 유교이념에 기초를 둔 나라이죠! 이러한 조선사회의 성격은 형벌제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쳐 외견상으로는 고려의 제도를 답습하면서도 그와는 다른 독특한 조선시대만의 형벌제도로 발전시켰다고 합니다.

1. 태형&장형

태형은 물푸레나무로 만든 작은 매로 볼기를 치는 형벌로, 10대부터 시작하여 50대까지 5등급으로 나누어지는데요, 태형은 조선말 장형이 폐지된 뒤에도 이어지다가 1920년에 가서야 완전히 폐지된, 가장 오랫동안 남은 형벌 중 하나입니다.

장형은 큰 회초리로 볼기를 치는 형벌로 60대부터 시작하여 100대까지 5등급으로 나누어집니다. 태형보다 더 중한 벌로, 매의 규격도 태형 집행 때 쓰이는 회초리보다 크고 두껍다고 해요. 그리고 태형과 장형은 가장 약한 벌에 속하지만, 살점이 뜯겨 나가거나 뼈가 부러지고, 심한 경우 죽기까지 이르기 때문에 나이가 70세 이상이거나 15세 이하인 자, 폐병에 걸린 자, 임신한 여자에게는 형을 집행하지 않고 대신 벌금을 냈다고 합니다.

사극에서 “곤장을 매우 쳐라!”라는 말을 자주 들어 보셨을 텐데요, 사실 곤장형(곤형)은 조선 후기에 등장한 형벌로, 삼국시대,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에서 이런 대사가 나오면, 이는 시대를 너무 앞서간 것 이였죠! 또한 태형, 장형과 다르게 볼기와 넓적다리를 나누어 쳤으며, 곤장(곤)의 크기와 두께에 따라 소곤, 중곤, 대곤, 치도곤으로 분류됩니다. 그 중 치도곤은 가장 두껍고 아파 ‘치도곤을 안긴다’(심한 벌을 주다라는 뜻)라는 말이 유래될 정도라고 하네요.

대부분 전래동화 ‘흥부전’을 읽은 기억이 있을 텐데요, 원본을 읽어보면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흥부는 매품을 팔러 갔다가, 그 매품마저 다른 이가 먼저 팔아버려 빈손으로 돌아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여기서 ‘매품’이라는 것은 예전에 삯을 받고 태형, 장형, 곤장형 등 매를 대신 맞아주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태종 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속전(벌금형)으로 매를 대신하였기 때문에, 굳이 매품이 필요가 없으므로 매품팔이라는 것은 <흥부가>에서 나온 허구이거나 단지 떠도는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설도 있다고 하네요.

2. 도형&유형

도형은 일정기간 동안 관아에 가두어 놓으며, 1년~3년 동안 소금을 굽거나 쇠를 불리는 등의 노역을 하는 형벌입니다. 오늘날의 징역형과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강도면에서는 징역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세다고 해요. 먼저 장형을 받아 매를 맞고 시작하는데다가, 감옥에 가둔 다음 날이 밝으면 끌어내서 채찍을 맞으며 힘들게 일하는 형벌이라고 하네요.

유형은 사형대신 먼 지방에 유배를 보내 죽을 때까지 살게 하는 것으로 2000리, 2500리, 3000리 3단계로 구별되었답니다. 그런데 한양에서 남쪽 끝까지 해도 1000리 밖에 되지 않은 좁은 땅인 조선에서 어떻게 이 형벌이 실행될 수 있었을 까요? 대부분은 유배지로 곧장 가지 않고 거리에 맞게끔 빙빙 돌아갔다고 해요. 그러다가 세종 때에 이동거리를 2000리 -> 600리 밖, 2500리 ->750리 밖, 3000리 -> 900리 밖 바닷가 고을, 로 수정합니다. 당파싸움이 치열했던 조선시대, 수많은 선비들과 예술가들이 이 형벌을 당했는데요, 유배기간동안 선비들은 학문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와 시간을 갖을 수가 있어, 허준「동의보감」, 정약용「흠흠신서」등 여러 서적들이 유배 중에 저술되었으며 정약전(정약용의 형)등 유배생활동안 서당을 지어 섬의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전념했던 선비들도 있다고 합니다.

3. 사형

명나라의 법률에 영향을 받아서, 조선시대 사형은 교형참형 2종으로 정해져 있는데요, 교형은 신체를 온전한 상태를 두고 목을 졸라 죽이는 것이며, 참형은 보통 신체에서 머리를 잘라 죽이는 것인데요, 유교를 근간으로 한 조선에서 부모에게 물려받은 신체를 손상시키는 것은 큰 죄로 여겨졌기 때문에, 교형보다 참형이 더 강한 벌이라고 합니다.
이 두 가지 이외에도, 많은 사형 방법들이 존재했다고 하네요.

-사사 : 사약을 마시게 하여 죽게 하는 것으로 왕족이나 직책을 가진 자가 역모에 관련되었을 때, 시신을 온전히 보전하기 위해 집행 되었어요. 사실 사극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약을 먹고 바로 피를 토하는 장면은, 전부 잘못된 장면이라고 해요. 현재 학자들은 비상, 천남성, 부자가 사약의 주 재료라고 추정하고 있는데요, 이 재료들은 모두 독성을 지녔지만, 약으로도 쓰였기 때문에 체질에 따라 몸에 맞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은 사약을 마셔도, 보약 한 첩을 먹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네요. 게다가 사약을 마시는 동안 위와 간에서 독성분의 90%가 사라지기 때문에 사약의 효과가 많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16세기 문인 임형수 라는 자는 사약을 먹다가 안주를 권유 받는 기괴한 상황에 이르렀는데요. 결국 그는 사약을 18잔까지나 마시고도 멀쩡하여, 결국 목을 매어 자살 했다고 합니다.

-거열 : 이 단어 자체는 ‘수레를 사용해 몸을 찢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요. 이 형벌은 죄인의 팔과 다리를 네 방향으로 소에 묶은 후, 동시에 소들을 몰아 사지가 찢겨 죽게 하는 것으로 대부분 능지처참형으로 잘못 알고 있는 형벌입니다. 능지처참은 죄인의 살을 산채로 뜨는 형벌로, 사형수는 오래 살아있도록 유지하면서, 최대한으로 살을 많이 발라내는 방법입니다. 조선에서는 능지처참형으로 판결이 나와도 대신 거열형을 집행했고, 거열형으로 판결이 나올 때는 대부분 참형에 처한 뒤, 시체에 거열형을 행하듯이 사지를 절단하는 형태가 많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거열형과 능지처참형을 헷갈렸다고 합니다.

-부관참시 : 한자어를 풀이하면 ‘관을 쪼개어 시체를 자르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 형벌은 말 그대로 이미 죽은 자의 무덤을 파헤쳐 관을 부수고 시체를 꺼내어 참형, 또는 능지처참형을 집행하는 것으로, 연산군 시대 무오사화, 갑자사화에 연루된 자 등에 대해 부관참시형이 시행되었다고 하네요. 유교 문화권인 조선에서 이 형벌은 공식적으로 그 사람은 존중 받을 가치가 없다는 의미에서 행하는 일종의 영혼 살인이면서, 귀신이나 신령 등 초자연적인 존재 역시도 왕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효수(=효시) : 효수는 ‘머리를 매달다’라는 의미를, 효시는 ‘목 매달아 보이게 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형벌은 참수형이나 능지처참, 부관참시를 당한 죄수의 머리를 매달거나 시체를 길거리에 내버려 두어 사람들에게 참혹한 죽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나쁜 짓을 하면 이렇게 된다는 경각심과 위협을 주기 위해 실행했다고 합니다. 조선 말기 갑신정변에 실패한 개화파들이 사형 후 효수되었고, 이러한 소식을 접한 일본은 김옥균의 장례식을 거행하면서 한,청 양국의 응징하라는 시위까지 벌어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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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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