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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증의 아버지, 호패
– 네가 너라는 걸 어떻게 증명할래? –

‘호패법’ 네가 너라는 걸 어떻게 증명할래? 이번 포스팅에서는 여러분이 늘 지갑 속에 가지고 다니는 주민등록증이 조선시대에는 어떤 모습으로 무슨 의미를 가지고 어떻게 활용됐는지 알아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역사 공돌이입니다.
매년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고 나면 새해를 맞는 반가움과 함께 SNS에 수도 없이 올라오는 일명 ‘민증 봉인해제’ 인증 글을 보신 적 있으시죠?

다들 성인이 되었다는 자유를 만끽하며 지니고 있던 주민등록증을 실제로 사용해보는 것이죠. 항상 KOSTORY 포스팅을 위해 고민하는 저는 여기에서 궁금한 점이 생겼죠.

“요즘은 본인이 본인임을 떳떳하게 증명하고자 하고, 그걸 위해 ‘주민등록증’이란 걸 사용하는데, 과거 우리 선조들은 어떤 제도를 어떻게 사용했을까?”

그래서! 오늘의 주제는 주민등록증의 아버지, 호패에 대한 FunFun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호패’라는 말은 많이 들어보셨나요? 저는 중, 고등학교 역사시간에 스치듯이 지나가서 어디에 쓰이는지 대충 알고 넘어갔던 기억이 있어요. 하지만, 사실 호패가 조선시대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가 아주 크답니다. 그에 대한 얘기를 지금부터 해볼까 해요.

호패법은 원나라에서 처음 시작해서, 고려 공민왕 시절에 이를 모방한 제도를 시행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죠. 이후 조선 태종대에 와서야 비로소 사용범위가 확대되어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답니다. 참 태종은 정말로 많은 일을 했죠? 사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태종이 이렇게 조선 초기에 제도의 틀을 확실히 확립했기에 몇 백년의 역사를 일궈나갈 수 있었지 않나 싶네요 ^^

  • 1413년(태종 13) ~ 1415년(태종 15)
  • 1459년(세조 5) ~ 1470년(성종 1) 12월
  • 1610년(광해군 2) 10월 ~ 1612년(광해군 4) 7월
  • 1626년(인조 4) 3월 ~ 1627(인조 5) 1월
  • 1675년(숙종 1) 11월 ~

그럼, 호패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할까요?


하나, 호패란 무엇일까?

‘호패’는 이름 호 號, 패 牌패를 써서 ‘이름을 나타내는 명찰’ 정도로 해석할 수 있어요. 16세 이상의 남자에게 주어졌고, 여자나 노비는 호패가 없거나 제한적이었죠. 그런 의미에서 호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회의 구성원이라고 인정받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호패에는 어떤 내용이 담기고 어떤 모양을 가지고 있을까요?

호패는 기본적으로 가로 약 4.2cm, 세로 약 11.9cm, 폭 약 0.6cn의 휴대할 수 있는 막대 모양을 하고 있고, 앞면에는 이름, 나이, 직책 등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는 정보를, 뒷면에는 발행 연도와 관청의 낙인을 새겼어요. 어찌 보면 생각보다 매우 간단명료하죠? 하지만 호패가 ‘신분’이라는 정보를 담게 되면서, 시행과정에서 신분간의 차이가 자연히 발생했죠.


, 누구에게나 같진 않아

애초에 계급에 그림에서 보이듯이 같은 용도의 명찰이지만, 너무나도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네요. 참 때깔부터가 다르네요 ㅠㅠ 조선시대에는 명찰마저도 확고한 신분체계를 반영하고 있군요. 특히, 신분과 계급, 직업에 따라 호패의 재료마저도 구분했어요. 2품 이상은 상아, 3품 이하 잡과 합격자는 , 생원과 진사는 황양목, 일반 백성들은 잡목으로 만들었어요.

심지어 호패에 적히는 내용도 제각각이었어요. 간단한 개인정보를 적는 양반의 것과는 달리 종들은 소속된 집, 나이, 리理 단위 거주지 주소, 얼굴색, 수염 유무, 키까지 자세히 적어 낙인을 찍어야 했어요. 낮은 신분일수록, 자세한 인적사항을 적게 해서 각종 국역과 세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그 대상인 양인들이 거주지를 이탈하는 것을 막는 용도로 사용 했던 것이죠. ‘사회질서’라는 명목이 백성들을 도리어 압박해오는 것으로도 느껴지네요.

신분 호패에 들어갈 내용
2품 이상 관직, 성명, 시관1)산관2)의 여부, 현관
3품 이상 관직, 성명, 산관
3품 이하 관직, 성명, 거주지
서민 관직, 성명, 거주지 및 얼굴빛․수염의 유무도 기재
잡색인 직역 소속
노비 주인, 연령, 거주지, 얼굴빛, 신장, 수염의 유무

사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신분에 따라 호패를 제작하는 절차도 달랐답니다. [조선왕조실록] (1413년 (태종 13년) 9월 1일)의 기록을 보시죠.

“본인이 호패를 만들어 바치도록 하며, 자기가 만들 수 없는 자는 나무를 바치게 하여 공장(工匠)이 만들어 주도록 한다. 단, 2품 이상과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관리는 각자 호패에 기록할 내용을 관청에 제출하면 관청에서 호패를 만들어 지급한다.”

그래서 글자를 모르는 양인들은 사비를 들여 전문 호패집에서 제작해야 했고, 제작한 호패와 호구단자3)를 함께 관청에 제출하고 낙인을 받은 뒤 사용해야 했어요. 그리고 본인이 사망하면 그 호패는 국가에 반납하게 되어 있었답니다. 뭔가 낮은 신분에게 더 부담을 주는 느낌이 드네요. 사비로 만들게 해놓고 반납하게 하는 건 또 뭐람… ㅠㅜ 왠지 반발이 있었을 것 같죠???


, 민중들에게 호패는…

주민등록증이 너무나도 당연한 사회를 살아가는 저에게는 호패법이 여러 번 중단되었다는 게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당연히 자기가 자기인 걸 증명할 수 있어야 편하게 살 수 있고 불합리한 처우를 안 당하지 않을까 생각했었죠.

하지만, 백성들이 호패를 받기만 하면 호적과 군적에 올려지고 군역과 그 외의 국역을 져야 했다고 해요. 백성들이 이를 피하려고 호패를 위조, 교환하였고 심지어는 국역을 피하려고 양반의 노비로 들어가는 경향도 증가해서 국가적인 혼란까지 일으켰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안하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했던 탓에 중단이 되었던 거겠죠. 하지만 아무래도 호패가 국정에 필요하다보니 호패에 대한 법을 강화시켜서 이 문제를 타개하려고 했답니다. 조선 후기 법전 [속대전]을 보면 다소 가혹하다는 느낌이 드네요…


, 호패의 필요성

그럼, 이런 부수적인 제도 개편과 백성들의 위조 문제도 많았던 호패법이 당시에 꼭 필요했던 이유와 구체적으로 사용했던 용도가 무엇일까요?
아마 지금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텐데 첫째로, 세금이나 군역 등의 각종 국역을 부가하기 위한 통계자료를 만드는 데에 가장 큰 의미가 있겠죠. 어느 마을에 남자가 몇 명인지, 나라 운영에 필요한 세금은 얼마나 걷고 또 국방을 강하게 할 군인은 얼마나 뽑아야 할지 결정하는 것이죠. 요즘 같은 체계적인 통계시스템이 없던 조선 시대 당시에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아니었나 생각되네요~

둘째로, 호패에는 신분에 대한 정보와 본인을 증명할 수 있는 정보가 적혀 있다 보니, 관아 출입이나 각종 검문 시에 용이하게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이죠. 뿐만 아니라 국가의 필요에서 그치지 않고 흉년, 가뭄이 든 해에는 백성 구휼도 호구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호패 사용이 백성들에게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어요.
사실 제가 생각하는 호패법의 진면목은 임금의 통치력이 가장 하부단위인 백성한테까지 미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신분 사칭을 막고, 유랑민의 유입을 막아 촌락의 안정과 정착을 도모했던 것이죠. 이는 조선의 통치체제가 완비될 수 있었던 근원이 되었고 훗날 세종대왕 시대에 최고의 전성기를 이루는 기반이 되었다고 평가 받는 답니다.


다섯, 현대판 호패

이렇게 호패법을 시작으로 아래와 같이 오랜 역사 속에서 지금 우리가 가지고 다니는 주민등록증이 탄생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특히, 1968년 최초의 대한민국 주민등록증의 경우에는 종이로 되어 있었고, 성명, 주민등록번호, 본적, 주소, 호주 성명, 병역사항, 발급일자, 주소 이동란, 특기번호 등 마치 주민등록 등본을 들고 다니는 듯 했어요. 그리고 이때까지도 직접 수기로 적었기 때문에 위, 변조의 위험이 크고 훼손될 가능성도 커서 2000년에 이르러서야 우리가 현재 쓰는 플라스틱 카드형 주민등록증이 등장했답니다.

  • 1413년: 호패법 시작
  • 1895년: 갑오개혁으로 폐지
  • 일제강점기: 황국신민증으로 변경
  • 6.25 전쟁: 간첩 식별을 위한 시,도민증 발급
  • 1968년 11월: 대한민국 최초의 주민등록증 발급
  • 1975년: 13자리 개인정보를 포함한 지금의 주민등록증 사용

어떤가요? 지금의 주민등록번호도 호패와 같이 많은 정보를 담고 있죠?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직접 글자로 쓰지 않고 상징하는 숫자를 이용한다는 것과 직업이나 신분 등의 정보가 사라졌다는 걸 들 수 있겠네요.

특히 최근에는 전자 칩에 개인 정보를 내장하는 ‘전자주민증’이나 개인정보를 담은 ‘ID Chip’을 아예 몸 안에 이식하는 바이오칩으로 신원정보나 진료정보등을 담는 형태도 등장하였어요. 충남 아산시에서는 국내 최초로 아기의 입안 상피세포를 체취해서 유전정보와 부모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등을 담는 DNA 주민등록증을 발급하기도 했답니다. 이와 같은 시도들은 카드나 종이와 같이 부가적으로 소지해야할 필요 없이 나 자신이 나 자신을 증명할 수 있도록 해서 미아 찾기 등에서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받는다고 하네요.

역사 속 호패법에 대한 이야기! 어떠셨나요? 재미있으셨나요? 저는 또 역사 속에서 재미있는 소재를 발견하면 그 즉시 여러분을 만나러 돌아올거에요. 그때까지 역사에 대한 관심 이어나가 주실 거라 믿어요.>_< 독자 분들을 강하게 믿으면서! 그럼 지금까지 역사 공돌이! 다음에 또 봐요~


부록 1

인터넷 서칭하다가 찾아보니, 현대에는 단순히 신원 정보를 담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개성을 어필할 수 있는 디자인 상품으로도 활용하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여러분도 자기에게 어울리는 재료와 모양으로 호패를 만들고 그 안에 나만의 이야기를 담아보는 건 어떨까요?

부록 2

아 참, 2017년 5월 30일부터 주민등록번호 유출로 피해를 보는 등 일정 요건이 갖추어져 있다면 주민등록번호를 바꿀 수 있다고 합니다. 생년월일과 성별 부분을 제외하고 지역표시번호 등 나머지 부분이 바뀌게 된다고 하네요!!! 참고로 알아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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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공돌이

'No more poker face' 이제 더 이상 모르는 것을 숨기지 말자! 당당하게 역사에 대해 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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