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2편

안녕하세요! 에디터 홍시입니다 🙂
어느새 한 달이 지나고 제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훈민정음 2편! 훈민정음 반포 그 이후를 다뤄보려고 해요. 🙂

혹시 훈민정음 1편이 궁금하신 분들께서는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훈민정음 1편 바로가기

1. 훈민정음 반포 이후

1-1) 훈민정음 반포 그 이후…

1446년 9월 반포 된 훈민정음은 그 이후로 많이 보급되며 널리 퍼져갔어요. 세종대왕은 과거를 볼 때 ‘훈민정음’을 시험 과목에 포함시켰으며, 불경과 경서를 훈민정음으로 언해하고 간행하고, ‘용비어천가’를 만드는 등 한글의 사용을 적극 권장하고 활용하도록 하였어요. 이렇게 보면 한글은 탄생 이후로 임금의 손에서 양반에게로, 양반의 손에서 평민에게로, 평민의 손에서 나라와 백성에게로 순조로이 번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1-2) 한글과 양반

한글이 창제되었을 당시 완고한 낡은 사대주의 세력의 반대에 마주하였고, 연산군 때 연산군은 자신을 비방하는 한글 투서를 보게 되면서, 한글이 자신의 명예를 실추시킨 대상이라고 규정하고 한글 사용을 전면 금지시키고 한글을 쓰는 자는 체포하는 등 한글 사용을 억압하기도 했죠.
그러나 사실 사대부들 사이에서도 훈민정음을 수긍하는 분위기가 존재하였고, 처음에는 반감을 표출하기도 하였지만 얼마 안 있어 그들도 훈민정음에 대해 감탄하였다고 해요. 또 연산군 시기에도 세종대왕은 확고한 업적으로 민간에 자리잡고 있었기에, 오히려 이를 억압한 연산군 행동의 포악함을 증명해주는 사례가 되기도 하였죠. 이렇게 양반들과 사대부들에게 어느 정도 정착이 된 한글, 그렇다면 그들은 한글만 사용하였을까요? 아쉽게도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에요. 공적인 문자 생활은 여전히 한자로 행하였으며 공적이 아닌 문자 생활에 제한되어 한글이 사용되었다고 하네요.

1-3) 한글과 백성

한편, 훈민정음의 본래 뜻이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이고, 따라서 세종대왕은 백성들을 교화시키기를 바라왔었죠. 세종대왕은 이 교화의 주체를 지배계층으로 정했고, 그래서인지 백성이 아니라 지배계층에서 훈민정음을 더 많이 사용했고 이들이 백성을 교화 시키려고 노력했죠. 따라서 지배계층의 수장이나 교육기관인 향교의 선생들이 이 주체가 되었고 부녀자나 어린이들이 교화의 대상이었죠. 학생들은 초등교육 기관인 서당에서 이미 훈민정음을 배웠고 한글로 된 책으로 공부를 하였고, 향교에서는 한글을 읽고 쓰며 나아가 과거 시험과목을 위한 ‘훈민정음해례’ 혹은 ‘동국정운’ 등을 공부하였죠. 한편, 일반 가정에서도 아이들에게 훈민정음을 교육했다고 해요. 그만큼 지배계층은 남녀노소 관련없이 모두 훈민정음을 읽고 쓸 줄 알았다는거죠.

1-4) 한글로 이루어진 소설들

한글의 등장과 더불어 조선 후기에 국문 소설이 본격적으로 출현하게 되요. 많은 사람들이 한글을 익혔을 뿐만 아니라, 상품 화폐 경제의 발전에 따른 독자들의 요구에 의해 소설도 하나의 상품으로 등장했기 때문이죠. 가장 많이 출판된 것은 영웅 소설 혹은 군담 소설인데, 우리가 지금도 알고 있는 것들 중에 <전우치전>, <홍길동전>, <박씨전> 등 이 있어요.


참고: 세책가, 도성안의 모습으로 중앙에 책을 파는 가게가 보인다. 2층에는 필사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는데 이 곳을 통해 조선 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통속 소설들이 퍼져 나갔다고해요.

앞에서 언급했던 <홍길동전>, <전우치전> 은 현대에 와서도 각색되어 드라마와 영화로 나오기도 했어요. ^_^



2. 한글의 우수성

2-1) 유네스코 지정

<출처 :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훈민정음은 1997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어요. 훈민정음은 세계적 중요성·독창성·대체 불가능성 이 세 가지 강점을 가지고 있었기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었죠.

-세계적 중요성

게일(캐나다 출신 선교사, 한국어 학자) 의 선언문에서 “세종대왕은 단지 동양에만 기여한 것이 아니라 세계에 이바지한 왕이다. 훌륭한 일을 많이 하였지만 한글 창제가 그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일이었다.” 라고 말하며 훈민정음을 국제적으로 인정하기도 하죠. 이는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세계적으로도 훈민정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해요.

-대체불가능성 & 독창성

한글은 28자로 되어있고 (오늘날에는 4가지가 쓰이지 않고 24자만 쓰입니다.) 한국어를 완벽하게 표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배우기와 사용하기에도 매우 편한 문자체계죠. 게다가 “한자로 한국말을 적는다는 것은 네모난 손잡이를 둥근 구멍 안에 억지로 밀어 넣는 것만큼 어울리지 않는다.” 라고 정인지가 표현한만큼, 한국어에서 한글을 대신 할 수 있는 건 존재하지 않죠. 또한 훈민정음은 만든 사람과 만든 시기가 정확하게 알려진 거의 유일한 문자로 독창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2-2) 문맹률 0%

세종대왕의 한글 덕분에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거의 0%에 가깝다고 해요. 그러나 한글은 우리나라의 문맹률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문맹 퇴치에도 기여하고 있다고 해요. 이뿐만 아니라 유네스코에서는 문맹 퇴치에 기여한 이에게 상을 주는 데 이 상의 이름을 ‘세종대왕상(King Sejong Prize)’ 이라고 하며 한글이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에 얼마나 영향력을 끼치는 지를 알 수 있죠.
유네스코 세종대왕상은 1990 년에 인도 과학 대중화 단체에게 처음 수여된 이래 가나, 인도, 요르단, 튀니지,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필리핀 등 세계 곳곳에서 문맹 퇴치에 커다란 공을 세우거나 성공적인 활동을 펼친 단체에 수여되고 있다. 수상자에게는 소정의 상장과 메달, 그리고 38,000 달러의 상금이 지급된다.

2-3) 한글날

그렇다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한글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한글을 기억하는 대표적인 예로, 국경일인 10월 9일 ‘한글날’이 있네요. 이 날은 국가에서 지정한 공휴일인데요. 이 날 국민들은 하루만이라도 영어나 외래어 사용을 자제하자! 한글을 많이 사용하자! 라고도 하며 한글날의 의미를 되새기죠. 또 영화 포스터를 걸어놓을 때도 그 날 하루는 영어로 써져있는 제목도 한글로 바꾼다던지, 한글과 관련된 이벤트를 여는 등 많은 사람들은 한글날을 기념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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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결론

지금까지 짧게는 조선의 훈민정음 반포 이후 생활, 길게는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의 훈민정음을 알아봤어요. 우리는 하루라도 ‘한글’을 쓰지 않는 날이 없죠. 만약 ‘한글’이 창제되지 않고 계속 한문을 써야 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불편했을 거라 생각해요. 그러나 걱정되는 건 요즘 문제가 되고있는 한글 파괴인데요. 아름다운 한글, 쓸수록 멋이 드러나는 한글을 지키기 위해서는 맞춤법은 당연히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과도하고 무의미한 외래어 사용을 자제하고, 한글이 있음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좋은 쪽으로 발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럼 다음에 다른 주제로 또 봐요! 안녕~~



About the Author

홍시

21/여자/세종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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