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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정난(癸酉靖難)

오랜만이에요!!!!!! 에디터 굥이에요!! 뭔가 많이 봤던 영상이죠~ 바로 관상에서 수양대군이 등장하는 장면이에요. 이번에는 [영화] ‘관상’ 그리고 [드라마] ‘공주의 남자’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인 계유정난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조선 시대에 성공한 쿠데타(?)는 계유정난(1453년), 중종반정(1506년), 인조반정(1623년) 등이 있죠! 그런데 좀 이상한 부분이 있지 않나요?? 왜 계유정난만 반정이 아니라 정난이라고 하였을까요??



한자를 잘 살펴볼까요? 靖 편안할 (정), 難 어지러울 (난) 「어지러움을 편안하게 한다.」
즉 癸酉靖難: 계유년에 일어난 어지러움을 편안하게 하였다.
세조와 계유정난을 일으킨 그 대신들은 이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정난(靖難)이라고 명명했어요. 그런데 다른 학자들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신하들이 많이 죽어나갔기 때문에 계유사화라고 불리기도 해요.

계유정난 그 배경

수양대군(세종의 둘째) 단종
측근 관람, 한명회,
신숙주(집현전학자 소장파관료),
홍윤성(무관), 양정(무관),
황수신(영의정 황희의 아들)
우의정 김종서 ,좌의정 남지,
영의정 황보인, 이조판서 민신,
정인지(판중추원사), 이계천(참판),
이순지, 이양(좌찬성),
조극관(병조판서)
왕실종친 양녕대군(세종의 형),
임영대군(4째), 영응대군(8째),
신빈김씨(세종의 후궁),
소생인 계양군
안평대군(3째),
금성대군(6째)

세종에 이어 즉위한 문종은 적장자 계승원칙에 의하여 조선 최초로 왕이 되었어요. 하지만 즉위한지 2년 만에 죽고, 그 뒤를 단종이 이어 왕이 되었어요. 이때 단종의 나이는 12세 초등학교를 다닐 나이에요ㅠㅜ 왕의 노릇을 하기에는 아주 어린나이였어요. 그런데 왕실에는 대비, 대왕대비, 문종의 비 ‘현덕왕후 권씨’도 이미 1441년 세상을 떠나서 이 어린 단종을 보필해줄 사람은 없었어요. 자신이 단명할 것을 예감한 문종은 어린 단종이 걱정되어 김종서, 황보인 등의 대신들에게 단종을 잘 보위하여 줄 것을 유언으로 남겼어요. 그러나 정치적 야심이 컸던 수양대군은 김종서와 같은 대신들이 정치를 주도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어요.

계유정난, 이런 순서로 진행되었다고?
수양대군은 거사를 결정하고 김종서의 집을 방문하였어요. 그는 자신의 편지를 읽고 있는 사이에 김종서를 철퇴로 쳤습니다. 수양대군은 김종서를 철퇴로 친 이후 사대문과 주요 군 시설을 장악하였어요. 그 다음에 단종에게 김종서와 안평대군이 역모를 꾀했다고 보고했어요.

왜 제일 먼저 김종서를 공격했을까??
김종서는 세종시기 6진을 수복하였어요. 그래서 백두산 호랑이라는 별칭으로 불리었다고 해요! 게다가 김종서는 세종에게는 친구와 같은 신하였고 문종시기에도 뛰어난 신하였으니, 단종 시기에 김종서의 위세는 엄청났을거에요. 세조는 당시에 큰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3정승(김종서, 황보인, 남지) 중에서 김종서를 가장 위협인물로 판단했고 제일 먼저 공격했던 것으로 보여요!!


한명회 등을 시켜 강화문과 대궐문을 장악하였고 단종의 명을 빙자하여 자신에게 비협조적인 대신들을 입궐하게 하여 궐문에서 살해하였어요. 철퇴에 맞은 김종서는 대궐에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수양대군이 이미 장악한 이후라 들어가지 못하였고, 사돈댁에 숨어있었죠. 하지만 결국 11월 11일 수양대군에 의해 제거 되었어요. 자신의 정적들을 제거한 수양대군은 스스로 영의정부사, 이조·형조판서, 내외병마도통사의 관직을 얻고 권력을 잡았어요.

날짜 계유정난 일정
1453년 11월 10일
(음력 10월 10일)
김종서에게 철퇴→ 경복궁과 대궐문을 장악. 정인지, 참판 이계천, 이순지, 영의정 황보인, 좌촨성 이양, 병조판서 극관 등을 입궐하게 해 살해
우의정 정분을 유배 시켰다가 사약을 내려 죽임
1453년 11월 11일 사돈댁에 피신해 있던 김종서를 제거
1453년 11월 이후 안평대군 → 강화도에 유배, 사약. 살해된 조정 중신 처첩, 자녀들을 노비로 전락시켰다.
수양대군 스스로 영의정부사, 이조·형조판서, 내외병마도통사등을 겸직함.
1455년 단종 수양에게 선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남.

수양대군은 또한 안평대군을 처음에는 ‘처벌하지 않을 것’처럼 대했어요. 하지만 안평대군은 강화도로 유배를 시켰다가 사사하였고. 안평대군의 아들 우직은 진도에 유폐시키고, 며느리는 관비로 하였어요. 1455년 윤 6월 위협을 느낀 단종은 수양대군에게 선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나며 수강궁으로 들어갔어요. 하지만 단종복위운동이 발각되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에 유배되었고, 1457년 9월 한명회, 신숙주 등의 주장을 받아들여 단종을 죽이게 됩니다.

지금까지 계유정난에 대해 정말 간단하게 살펴봤어요!! 참 쉽죠? 세조는 자신이 계유정난을 통해 왕이 된 것에 대해 심적으로 불안함을 느꼈다고 해요. 그래서 단종의 어머니가 꿈에 자주 나타나서 침을 뱉었는데 그 자리에 종기가 생겼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불안함이 너무 커서 형수의 묘지를 파헤치기까지도 했다고 하네요!! 그럼 계유정난은 여기까지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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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more poker face' 이제 더 이상 모르는 것을 숨기지 말자! 당당하게 역사에 대해 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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