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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1편

 안녕하세요 🙂
KOSTORY 유일한? 여자? 에디터 홍시입니다!
(허허 많이 들어와주세요 코스토리는 상시 모집이랍니다! )
오늘은 “훈민정음” 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훈민정음은 한글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한글이 어떻게 창제 되었는지와 또 어떻게 쓰였는지

어느 정도는 다들 알고 계신 듯해요.
그래서 저는 대체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보다 좀 더 깊이 들어가지만 가볍게!

훈민정음에 대해 풀어보려 해요 🙂

그렇다면 이제부터 시작해보겠습니다 ! 

 1. 훈민정음이란 .. 

조선 시대에 한글이 창제, 반포되었을 당시의 공식 명칭을 얘기해요.
훈민정음과 관련된 서적에는  <훈민정음해례본> 과 이를 한글로 풀어 낸  <훈민정음언해본> 이 있죠. 

그렇다면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먼저 훈민정음 해례본에 대해 알려드릴게요.

훈민정음 해례본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훈민정음 해례본은 [예의편] 과 [해례편] 으로 나누어져있어요.

[예의편] : 세종이 직접 지었으며 한글을 만든 이유, 한글의 사용법을 간략하게 설명한 글
[해례편] : 성삼문, 박팽년 등 세종을 보필하며 한글을 만들었던 집현전 학사들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만든 원리와 용법을 상세하게 설명해놓은 글 
 

여기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국어 시간에 “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로 시작되는 문장은 [예의] 의 첫머리에 있는 한문으로 된 서문을 우리말로 바꾸어 놓은 것이죠. 이 첫머리에 있는 한문을 세종어제 서문 이라고 해요!
이와는 달리 [해례]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만든 원리와 용법을 상세하게 설명해놓은 글이죠! 차이가 이해가시나요?!

그렇다면 이 <훈민정음해례본> 과 <훈민정음언해본> 는 뭐가 다를까요?

 

훈민정음언해본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훈민정음언해본>은 <훈민정음해례본> 에서 [예의] 편만을 한글로 번역한 책을 의미해요.

번역한 사람이나 번역한 연대 등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세종 말년 ~ 세조 초기 사이로 사람들은 추정하고 있어요.  

 

이제 훈민정음해례본, 이를 이루는 예의편과 해례편 그리고 훈민정언해본의 차이를 잘 아실 수 있겠죠?

 

2. 훈민정음, 너는 왜 이 세상에 나오게 된거니?

사실 훈민정음의 창제 목적은,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그 이름에서 목적을 알 수 있죠.

여기서 세종이 직접 서술한 훈민정음 [예의편] 의 서문을 보시면 더 자세히 알 수 있어요.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漢字)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우매한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딱하게 여기어 새로 28자(字)를 만들었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쉬 익히어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할 뿐이다. ㄱ은 아음(牙音)이니 군(君)자의 첫 발성(發聲)과 같은데 가로 나란히 붙여 쓰면 규(虯)자의 첫 발성(發聲)과 같고,  …  중략. ”  <출처 : 조선왕조실록 세종 113권 세종 28년 9월 29일 갑오 4번째 기사>

많이 들어보신 첫 문장이죠!

이렇게 세종은 백성들을 생각하는 마음에 어려운 한자 대신 한글을 만들었다고 해요.

한자는 지금 배워도 어려운데, 그 당시 백성들에게 엄청나게 많은 한자를 다 알기엔 너무나 힘들 뿐만 아니라 한자의 어려움에 따른 문맹이 정말 많았겠지요. 사실 지금도 한자가 바탕이 된 한글이 너무나 많은데, 한글이 없었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우리나라겠죠 🙁  
 
 3. 이렇게 고마운 한글이 나오기까지 ..

한글이 창제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는지 몰라요. 세종을 도와서 같이 한글을 만들었던 집현전 학자들이 있던 반면에, 언문 제작을 반대했던 집현전 학자들이 있었어요. 그들은 언문 제작에 반대하는 상소를 세종에게 올리게 되는데, 이 반대 상소에 가담한 대표적인 학자는 최만리, 신석조, 김문, 정창손, 하위지, 송처검, 조근 등으로 알려져 있어요.

그러나 흥미롭게도 이들은 당시 집현전을 대표하던 쟁쟁한 학자들로 당대의 학풍을 주름잡던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한 사람도 집현전 학자이며, 반대한 사람들도 집현전의 학자라는거죠! 이렇게 보면 집현전 내부에도 갈등이 있었고, 학문적으로 생각하는게 달랐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이유로 한글 창제를 반대 했을까요?

<조선왕조실록 세종 26년 음력 2월 20일>
“신 등이 엎드려 보옵건대, 언문(諺文)을 제작하신 것이 지극히 신묘하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혜를 운전하심이 천고에 뛰어나시오나, 신 등의 구구한 좁은 소견으로는 오히려 의심되는 것이 있사와 감히 간곡한 정성을 펴서 삼가 뒤에 열거하오니 엎드려 성재(聖裁)하시옵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상소문은 시작해요. 시작은 정중하지만, 그 이후에는 매서운 말들이 이어져요.
(너무 길고 이해하기 어려워서 제가 카톡 형식으로 정리해봤어요. 혹시 본문이 궁금하신 분들은 조선왕조실록 세종편 26년 음력 2월 20일 부분을 참고해주세요!) 

조선왕조실록 바로가기

 

이러한 많~은 이유들로 최만리 등 반대파는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하죠. 이러한 상소문에 대해 세종은 설명을 해가며 그들을 설득해요. 또 보통 왕에게 상소를 올리면 귀양을 가는 일도 허다했는데, 세종은 하루 동안만 반대한 이들을 의금부에 가둬놓고 그 다음날에는 풀어줬다고 해요. 이렇게 세종은 그들을 설득했고, 이 때에 반대 상소문이 한 번 올라온 이후로 훈민정음이 창제되고 반포 될 때까지 다른 상소문이 안 올라 왔다고 해요. 그만큼 세종이 설득을 잘 하고, 그 설득에 반대파들도 납득하고 따라 열심히 한글을 창제 한 게 아닌가 싶어요. ㅎㅎ

 

이렇게 오늘은 훈민정음 1편을 마치려해요! 더 많이 알려드리고 싶었는데, 한 번에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면 지루할 수도 있어서 두 편으로 나눠서 알려드릴려고해요! 다음 2편에서는 훈민정음 반포 후의 사회의 변화와 그 모습, 훈민정음이 그 당시 가졌던 의의와 현재 가지는 의의, 훈민정음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관적인 제 생각을 곁들인 마무리로 찾아올게요! 그럼 20000~
훈민정음 2편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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