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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현전

 

나랏말싸미 듕귁에달아 서로 사맛디 아니할새

이 말 한번쯤은 들어본적 있지?! 바로 훈민정음의 서문에 나오는 말이야 🙂

그런데 이 훈민정음을 누가 만들었는지 알아?  대부분 세종대왕이라고 말하겠지만… 정확히는!!!! 세종대왕과 집현전의 학자들이 같이 만들었다고 해.

그런데 갑자기 그런거는 왜 알려주냐구? 이번 글에서 집현전의 학자들 할 때 나오는 집현전에 대해서 알아볼 것이기 때문이지. 이제 훈민정음을 만드는 것에 도움도 주고 조선 초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집현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세종 그 이전의 집현전

우리가 간단하게 아는 집현전의 이미지는 모두 다 세종 때의 모습이라고 말할 정도로 집현전은 세종 이전과 이후의 차이가 아주 심해! 사실 집현전과 유사하게 학문연구를 위한 제도들은 이미 삼국시대 때부터 유사한 제도들이 있었어. 그러나 집현전이라는 이름이 처음 사용된 것은 ‘고려의 인종’ 때 라고 해. 그러나 이는 곳 충렬왕 이후 유명무실한 기관이 되어 버려. 그리고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정종 때 집현전이 설치되는데 이것도 곧 유명무실 해져버리지… 🙁 이렇듯 세종 이전까지의 집현전은 이름만 있고 막상 잘 운영되지도 않는 유령 기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세종 때의 집현전

조선이 유교주의 국가인 것은 이미 알고 있을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조선에게 유교적 의례, 제도들의 확립은 꽤나 중요한 과제였어. 그리고 당시 명나라와의 외교도 중요한 과제였지. 그래서 세종은 이 두가지를 원활히 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고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 집현전을 설치하고 각별히 운영하기 시작해.

이렇게 운영되기 시작한 집현전은 처음에는 경연관으로서 왕의 학문적 조언자 및 교육자 역할을 맡게했어. ‘경연’은 왕이 유교적 교양을 쌓아서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도록 왕과 유신이 경서와 사서를 강론하는 것을 말해 그리고 이러한 경연 말고도 시간이 지나며 여러 가지 책의 편찬과 저술, 관문서 작성, 중국의 옛 제도 및 역사 연구 등 다양한 일을 맡게했지.

세종이 집현전을 얼마나 아꼈는줄 알아!? 이곳의 학자들이 연구에 불편하지 않게 많은 도서를 구입해주고 집현전에서 보관하게 하기도 하고 휴가도 주어 마음대로 독서하고 연구할 수 있게 하였고 이 밖에도 여러가지 특권을 주어 불편하거나 부족함 없이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고 해. (완전 꿀…내 자소서 여기에 내고 싶다.. 😕 ) 그 결과 우수한 학자들이 많이 배출되지.

또한 이 시기에 집현전에서는 많은 책들이 편찬되는데 《훈민정음 해례》 의 편찬 말고도 《농사직설(農事直說)》 《팔도지리지(八道地理志)》 《삼강행실(三綱行實)》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의방유취(醫方類聚)》 등 우리가 교과서에서 봤던 대부분의 조선시대의 대표 서적들이 다 이 시기 집현전에서 편찬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야.

이후 세종이 병이 들어 세자가 나랏일을 돌보게 되는데 이때 세자의 교육 맡아서 서연이라는 일까지 하고 있던 집현전은 세자가 나랏일 하는 것을 돕기위해 설치된 첨사원의 일까지 도맡아 하게되면서 점차 정치적 영향력이 커져.

 

세종 이후의 집현전

위에서 말했듯 점차 정치적 영향력까지 갖게된 집현전은 이전에 학문만을 이야기 하던것과 달리 점차 국가 정책논의에 참여하는 등 정치기관화 되어가지.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문종이 즉위한 후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집현전 학사들이 국왕에 대한 간쟁역할과 감찰 역할을 맡은 ‘대간’의 출입이 잦아지고, 점차 호간고론(好諫高論:바른 말을 좋아하고 높은 수준의 논의를 함)적인 집단으로 변하게되지. 이러한 집현전의 변화는 세조의 유교적 질서를 무시한 반정 이후 집현전 학사와 출신자들이 주가 되어 단종의 복위를 도모한 사육신 사건의 배경이되고, 이 복위 운동이 실패하면서 세조는 집현전을 없애버리게되지.

그러나 이 집현전에서 배출한 수준높은 인재들은 성종 때까지 조선 정치의 핵심부에서 활동하며 ≪경국대전≫ 편찬 등 세조-성종 시기 제도 확립에 큰 영향을 주었고 많은 유학자들을 배출해 조선의 유교화의 큰 공헌을 하게 돼! 😀


이렇듯 집현전은 꽤나 오래전부터 명칭은 있어왔지만 막상 내가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우리가 아는 역할들을 했던 세종 시기의 집현전은 37년 정도로 굉장히 짧은 존속기간을 갖고있어. 그러나 마지막에 썼듯이, 없어진 이후에도 조선 정치와 유교 발전에 큰 영향을 주어 그 짧은 존속기관과는 별개로 역사적 의의는 꽤나 크다고 생각해.

우리가 들어봤지만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잘 알지 못했던 집현전에 대한 글은 여기서 끝이야!!

나는 4주 후에 좋은 주제를 쉽게 설명해주러 다시 찾아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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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ingback: 조선 초기 막강한 정치 세력: 훈구파 | KO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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