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 <팩트 위에 팩트 더하기>

안녕하세요 ! 에디터 “홍” 이에요 🙂

오늘은 삼일절, 국가 공휴일인데요!

그래서 이번주 수요일은

특별하게 “삼일절” 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알려 드리려 해요 ♥

1. 삼일절이란?

  • 1919년 3월 1일, 한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 만방에 알린 날을 기념하는 날 (출처: 두산백과)

삼일절, 매년 3월1일 우리는 그저 공휴일로 생각하며 지나갔을지 몰라요!

저 역시도 여러 차례.. 그저 공휴일이구나 하며 놀러가기 바빴던 거 같아요.

그래서 준비한 이번주 수요일의 주제는 삼일절이에요. 우리가 알고 있는 삼일절에 대한 팩트에! ‘이런 사실도 있었구나!’ 싶게 하는 팩트를 얹어 알려드리려해요! 이제 쭉쭉 스크롤을 내려주세요 시작할게요!

 

2. 3.1운동의 배경

1910년 8월 29일 , 한일합병조약이 일제에 의해 강제로 체결된 후 우리 민족은 일제에 의한 통치 하에 놓이게 되죠. (한일합병 이란? 경술국치, 국권 피탈, 일제 강점, 일제 병탄 등으로도 불리는데 일제의 침략으로 한일합병조약에 따라 국권을 상실한 일을 일컫는 말)

일제는 정말 지독하고 가혹하게 우리 민족을 탄압했어요.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하고 탄압하는 것은 물론, 식민 교육을 실시하는 등 우리 민족의 뿌리를 완전히 뽑으려 했죠. 일제의 이런 추악한 행동들은 우리 민족이 그들에게 반감을 가지기에 충분했고, 독립을 꿈꾸고 있던 우리 민족들은 폭발 직전의 상황까지 이르렀습니다. 이 엄청난 반감에 불을 붙인 건 바로 1919년 고종의 사망 사건입니다. 1919년 1월 22일 고종이 갑작스럽게 승하하자, 일제가 고종을 독살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우리 민족의 증오는 극도에 달하게 되죠. 또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1918년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패전국 처리 문제를 논의한 파리 강화회의에서 민족 자결주의를 주장하죠. (민족 자결주의란 ? 각 민족은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을 수 없다는 주장) 강대국에게 탄압받고 고통받던 약한 나라들에게 이 민족 자결주의는 희망이며 기폭제가 되었죠. 이뿐만 아니라, 1919년 2월 8일 일본으로 유학을 간 우리 민족 유학생들이 독립선언을 함으로써 3.1운동을 일으킬 자극을 주게 되어요.

 

3. 3.1운동의 전개

이제 민족의 반감은 극으로 치닫고, 행동으로 앞장서자는 생각을 가지게 된 우리 민족은 행동 개시를 준비하게 되요. 손병희를 대표로, 여러 지도적 인사로 구성된 민족대표 33인이 3월 1일 오후 2시 정각 인사동과 태화관에 모여 한용운이 독립선언서의 낭독을 끝내자 만세삼창을 부른 후 경찰에 통고하여 자진 체포 당하게 되죠.

1919년 3월 1일 , 한용운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표들은 대한 독립 만세를 삼창하였으며 들이닥친 일본 경찰에 의해 연행되어요. 그런데 3.1운동은 단지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게 아니에요. 파고다공원에서는 5천여 명의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정재용이 팔각정에 올라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시위를 하게 되죠. 이 시위 행렬은 퍼지고 퍼지게 되는데, 수만의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면서 서울 시내는 독립에 대한 열망으로 흥분 된 군중들과 그들의 만세 소리로 꽉 차게 되어요. 또 이 만세 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가게 되었고 다음날에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대한독립만세의 소리가 울려 퍼졌어요. 또한 3월 3일 고종의 국장 때만 잠잠했을 뿐, 그 이후에는 매일 시위가 벌어졌으며 이는 모두 평화적인 시위였어요. 그러나 일제는 이 조차도 잔인하게 탄압하였는데, 이는 통계를 보면 알 수 있어요. 일본 측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3·1운동 이후 전국 집회 회수 1,542회, 참가 인원수 202만 3,089명, 사망자수 7,509명, 부상자 1만 5,961명, 검거자 5만 2,770명, 불 탄 교회 47개소, 학교 2개교, 민가 715채나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죠.

 

  • 파고다공원 / 1992년 5월 28일 탑골공원으로 개정
  • 민족대표33인

손병희(孫秉熙)·길선주(吉善宙)·이필주(李弼柱)·백용성(白龍城)·김완규(金完圭)·김병조(金秉祚)·김창준(金昌俊)·권동진(權東鎭)·권병덕(權秉悳)·나용환(羅龍煥)·나인협(羅仁協)·양전백(梁甸白)·양한묵(梁漢默)·유여대(劉如大)·이갑성(李甲成)·이명룡(李明龍)·이승훈(李昇薰)·이종훈(李鍾勳)·이종일(李鍾一)·임예환(林禮煥)·박준승(朴準承)·박희도(朴熙道)·박동완(朴東完)·신홍식(申洪植)·신석구(申錫九)·오세창(吳世昌)·오화영(吳華英)·정춘수(鄭春洙)·최성모(崔聖模)·최린(崔麟)·한용운(韓龍雲)·홍병기(洪秉箕)·홍기조(洪基兆)

<독립선언서>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 이로써 세계 만국에 알리어 인류 평등의 큰 도의를 분명히 하는 바이며, 이로써 자손만대에 깨우쳐 일러 민족의 독자적 생존의 정당권리를 영원히 누려 가지게 하는 바이다.

5천년 역사권위의지하여 이를 선언함이며, 2천만 민중의 충성을 합하여 이를 두루 펴서 밝힘이며, 영원히 한결같은 민족의 자유발전을 위하여 이를 주장함이며, 인류가 가진 양심의 발로에 뿌리 박은 세계 개조의 큰 기회와 시운에 맞추어 함께 나아가기 위하여 이 문제를 내세워 일으킴이니, 이는 하늘의 지시이며 시대의 큰 추세이며, 전 인류 공동 생존권의 정당한 발동이기에, 천하의 어떤 힘이라도 이를 막고 억누르지 못할 것이다.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 강권주의에 희생 되어, 역사 있은 지 몇 천년만에 처음으로 딴 민족의 압제에 뼈아픈 괴로움을 당한지 이미 10년을 지났으니, 그 동안 우리의 생존권을 빼앗겨 잃은 것이 그 얼마이며, 정신상 발전에 장애를 받은 것이 그 얼마이며, 민족의 존엄과 영예에 손상을 입은 것이 그 얼마이며, 새롭고 날카로운 기운과 독창력으로써 세계 문화에 이바지하고 보탤 기회를 잃은 것이 그 얼마나 될 것이냐?

슬프다! 오래 전부터의 억울함을 떨쳐 펴려면, 눈앞의 고통을 헤쳐 벗어나려면, 장래의 위험을 없애려면, 눌려 오그라들고 사그라져 잦아진 민족의 장대한 마음과 국가의 체모와 도리를 떨치고 뻗치려면, 각자의 인격을 정당하게 발전시키려면, 가엾은 아들, 딸들에게 부끄러운 현실을 물려주지 아니하려면, 자자손손에게 영구하고 완전한 경사와 행복을 끌어대어 주려면, 가장 크고 급한 일이 민족의 독립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니, 2천만의 사람마다가 마음의 칼날을 품어 굳게 결심하고, 인류공동의 옳은 성품과 이 시대를 지배하는 양심이 정의라는 군사와 인도라는 무기로써 도와주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나아가 취하매 어느 강자를 꺾지 못하며, 물러가서 일을 꾀함에 무슨 뜻인들 펴지 못하랴?

병자수호조약 이후 때때로 굳게 맺은 갖가지 약속을 배반하였다 하여 일본의 배신을 죄주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가는 실제에서, 우리 옛 왕조대대로 닦아 물려온 업적을 식민지의 것으로 보고 문화민족인 우리를 야만족 같이 대우하며, 다만 정복자의 쾌감을 탐할 뿐이요, 우리의 오랜 사회기초와 뛰어난 민족의 성품을 무시한다 해서 일본의 의리 없음을 꾸짖으려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격려하기에 바쁜 우리는 남을 원망할 겨를도 없다. 현 사태를 수습하여 아물리기에 급한 우리는 묵은 옛일을 응징하고 잘못을 가릴 겨를이 없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오직 자기 건설이 있을 뿐이요, 그것은 결코 남을 파괴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으로써 자기의 새 운명을 개척함일 뿐이요, 결코 묵은 원한과 일시적 감정으로써 남을 시새워 쫓고 물리치려는 것이 아니로다, 낡은 사상과 묵은 세력에 얽매여 있는 일본 정치가들의 공명에 희생된, 불합리하고 부자연에 빠진 이 어그러진 상태를 바로잡아 고쳐서, 자연스럽고 합리로운 올바르고 떳떳한, 큰 근본이 되는 길로 돌아오게 하고자 함이로다.

당초에 민족적 요구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었던 두 나라 합방이었으므로, 그 결과가 필경 위압으로 유지하려는 일시적 방편과 민족 차별의 불평 등과 거짓 꾸민 통계 숫자에 의하여 서로 이해가 다른 두 민족 사이에 영원히 함께 화합할 수 없는 원한의 구덩이를 더욱 깊게 만드는 오늘의 실정을 보라!

날래고 밝은 과단성으로 묵은 잘못을 고치고, 참된 이해와 동정에 그 기초를 둔 우호적인 새로운 판국을 타개하는 것이 피차간에 화를 쫓고 복을 불러들이는 빠른 길인 줄을 밝히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또 원한과 분노에 쌓인 2천만 민족을 위력으로 구하는 것은 다만 동양의 영원한 평화를 보장하는 길이 아닐 뿐 아니라, 이로 인하여서 동양의 안전과 위태함을 좌우하는 굴대인 4억만 중국 민족이 일본에 대하여 가지는 두려움과 시새움을 갈수록 두텁게 하여, 그 결과로 동양의 온 판국이 함께 넘어져 망하는 비참한 운명을 가져 올 것이 분명하니, 오늘날 우리 조선의 독립은 조선 사람으로 하여금 정당한 생존과 번영을 이루게 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 동양을 붙들어 지탱하는 자의 중대한 책임을 온전히 이루게 하는 것이며, 중국으로 하여금 꿈에도 잊지 못할 괴로운 일본 침략의 공포심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며, 또 동양 평화로써 그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에 필요한 단계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 어찌 사소한 감정상의 문제이리요?

아!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쳤도다, 위력의 시대가 가고 도의의 시대가 왔도다. 과거 한 세기내 갈고 닦아 키우고 기른 인도적 정신이 이제 막 새 문명의 밝아오는 빛을 인류 역사에 쏘아 비추기 시작하였도다. 새봄이 온 세계에 돌아와 만물의 소생을 재촉하는구나, 혹심한 추위가 사람의 숨을 막아 꼼짝 못하게 한 것이 저 지난 한 때의 형세라 하면, 참한 봄바람과 따뜻한 햇볕에 원기와 혈맥을 떨쳐 펴는 것은 이 한때의 형세이니 천지의 돌아온 운수에 접하고 세계의 새로 바뀐 조류를 탄 우리는 아무 주저할 것도 없으며, 아무 거리낄 것도 없도다.

우리의 본디부터 지녀온 권리를 지켜 온전히 하여 생명의 왕성한 번영을 실컷 누릴 것이며, 우리의 풍부한 독창력을 발휘하여 봄기운 가득한 천지에 순순하고 빛나는 민족문화를 맺게 할 것 이로다.

우리는 이에 떨쳐 일어나도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우리와 함께 나아가는 도 다, 남녀노소 없이 어둡고 답답한 옛 보금자리로부터 활발히 일어나 삼라만상과 함께 기쁘고 유 쾌한 부활을 이루어 내게 되도다, 먼 조상의 신령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우리를 돕고, 온 세계의 새 형세가 우리를 밖에서 보호하고 있으니 시작이 곧 성공이다. 다만 앞길의 광명을 향하여 힘차게 곧장 나아갈 뿐이로다.

4. 3.1운동의 영향과 결과

3.1운동은 전적으로 평화적인 시위였어요. 그러나 확실하게 일제에 저항한다는 의지를 나타낸 우리 민족의 행동이었죠. 이 독립운동은 너무 많은 희생자들을 만들었기에 원하는 목표를 다 이룰 수는 없었지만, 우리 민족의 독립정신을 선명히 드러내면서 민족주의운동의 시작을 알렸다고 할 수 있어요.

또 이 3.1운동의 결과 대내적으로는 일제의 무단정치가 끝나고 보다 교활한 문화정치 가 등장하게 되어요.

(* 문화정치란? :  일본이 바꾼 통치 형태로, 3 · 1 운동 후 조선 식민 통치 방법을 강경책에서 회유책으로 바꿈. 군인만 임명하던 총독을 문인도 임명하고, 헌병 경찰제를 보통 경찰제로 바꾸었다. 하지만 이 역시도 겉으로만 좋아 보이는 통치 형태)

대외적으로는 상해의 임시정부 탄생, 해외 무장독립운동의 촉진, 그리고 아시아의 다른 식민지 및 반식민지의 민족운동 등에 강한 영향을 끼쳤는데, 우리가 잘 아는 중국의 5·4운동을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어요.

( * 5.4운동이란? 1919년 5월 4일 중국 베이징[北京]의 학생들이 일으킨 항일운동이자 반제국주의, 반봉건주의 혁명운동. 우리나라의 3.1운동과 비슷한 노선을 따른다고 할 수 있으며 3.1운동에 영향을 받았다.)

 

5.마무리

지금까지 간략하게 나마, 삼일절을 기념하여 3.1운동에 대해 살펴보았어요. 저는 조금이라도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의 역사적 지식을 채워 가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해요! 이 글을 쓰면서 이것저것 조사를 해보니,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신 독립 투사들에게 무한한 감사함이 들더라구요. 앞으로도 매년 3월 1일 국기를 게양하며 이 마음을 유지하면서 기억해주셨으면 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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