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 개창의 정당성,
과전법

#정도전 #정몽주 #조준
#권문세족 #과전법은 일석이조!

여러분 모두 KBS 드라마 ‘정도전’의 이 장면을 기억하시나요? 정도전이 주장한 ‘계민수전’에 반대하는 정몽주가 조준의 ‘과전법’에 동의하여 이성계에게 계민수전의 시행을 단념하고 과전법으로 전세 개혁을 시작할 것을 제안하는 장면이랍니다.

계민수전?, 과전법? 전세개혁? 처음들어보는 생소한 말이 참 많죠? 역사공돌이의 오늘의 포스팅은 조선 개국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과전법’에 대한 FunFun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질문하나 해볼게요~ 자 우리 역사 속에서 권력의 상징은 무엇이었을까요?
돈? 직업? 아무래도 지금과는 다른 그 시절의 가장 큰 권력은 ‘땅’, 바로 토지의 소유에서 나왔을 것입니다. 농업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경제 활동 안에서 무엇보다 농경지로 사용할 수 있는 땅이야 말로 힘이자 돈이자 삶의 목적이었던 것이겠죠.

그.러.니.까!

당연히 조금 잘 사는 신분이라면 ‘땅따먹기’가 기본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고려시대 말 권력의 중심에 서있었던 권문세족이 힘을 키울 수 있었던 것도 여기에서 시작된 연결고리였던 것입니다.

소수가 거대한 땅을 독차지하고 다수의 백성들은 송곳 꽂을 땅조차도 없어 권문가의 땅에서 경작하고 수고비 정도를 벌면서 겨우겨우 살아가기 일쑤였죠. 권문세족 나빴어.. 정말

이토록 약한 백성들의 삶을 무너뜨려나가는 고려왕조를 보며 정도전은 이런 왕조의 존속이유는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토지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그는 아이디어를 냅니다. 그동안 끈질기게 자리잡고 있던 권문세족의 모든 토지대장을 개경에서 불태우는 커다란 ‘이벤트’를 실행해버린 겁니다.

그 불길이 여러날동안 꺼지지 않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 사건이 백성들을 향한 착취에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크다고 생각해요. 사실… 좀 막무가내 같기도 한;;;

이제 더 이상 토지에 대해 소유를 주장할 수 없게 된 이 토대 위에서 신진사대부의 토지제도 개혁 계획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개봉박두!

정도전은 말하죠. “가구마다 백성의 수를 헤아려서 그에 따라 토지를 줍시다! 권귀(권문세족)들에게 몰수한 토지를 몰수해서 백성들에게 주는 겁니다!”

이를 안 권문세족이 반대하는 건 또 당연하고… 백성에게 다 주면 권력의 상징인 땅을 가져야하는 ‘신진사대부’들도 조금 곤란했겠죠?! 그래서 결국 조준의 대체안으로 과전법이 등장하게 됩니다. 앞에서 본 영상에서 정몽주가 조준의 과전법을 옹호하는 것도, 신진사대부이지만 고려왕조의 존립을 유지하고자 했던 그에게는 토지의 국유화가 더 좋은 방안이었음을 보여주려는 거 같네요.

그렇다면 과전법이 뭘까요?

계민수전을 주장했던 정도전 마저도 고려말 사전의 폐단을 해결했다고 평할 정도로 절충한을 보여준 과전법(科田法)은 고려 말과 조선 초에 관리에게 토지를 주던 제도이고, 그런 토지를 과전이라 불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수조권’이랑 ‘토지 소유권’을 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에용! 수조권은 쉽게 말하면 정해진 땅에서 조세를 거둘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땅의 소유주는 아닌거죠. 그러니 땅의 소유권 자체를 백성들에게 주는 계민수전수조권만 관리들에게 주고 소유권은 국가가 가지는 과전법은 여기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죠.

이야~ 이걸 보면 백성들이 아예 배제 되었던 고려시대 토지제도에 비해서 국가 자체에서 관리하는 ‘과전법’은 고려왕조의 시대가 지고 조선왕조가 개창된다는 것에 가장 큰 정당성을 설파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죠. 왕조 교체에 대한 정당화를 위한 수단인 것이죠.
개창 주도 세력(역성혁명파 사대부)의 이익뿐만 아니라 일반백성들에게 이득을 가져다주니 금상첨화입니다.
백성들이 자급자족할 땅도 마련해주지 못하고 착취를 당하고 있는 이 잘못된 토지제도를 그냥 보고만 있는 왕조라면 지금 제 생각에도 차라리 싹 바꿔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될 정도네요!!!

과전법 이전에는…?

과전법이 고려의 전시과와 비슷한 점은 토지에 대한 ‘국유’의 개념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① 수조권이 국가에 있냐, 개인에 있냐에 따라서 공전, 사전으로 구분!
② 전, 현직 관레 18과로 나누어 지급!
③ 1대에 한 해서만 세습 허용!

이런 점들이 과전법에는 있었다는 게 달랐어요.

결국, 고려시대의 전시과도 무신정변 시기를 지나면서 완전히 붕괴되었고, 그 뒤에 권력을 잡은 권문세족에 의한 농장 경영이 널리 퍼지면서 고려 후기의 백성들이 고통받는 실정이 되어 버렸던 거죠 ㅠㅜㅠㅜ

아무튼 좋은 의도로 시작한 과전법!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하는데… 꼭 잃고 마네요 ㅠㅜ 과전법이 현직, 퇴직관료 본인 즉, 일대(一代)에 한하여 수조권을 인정해 준 제도인데, 관료가 죽고 유족의 생계를 위해 수신전·휼양전이라 하여 실질적으로 세습되어 가는 경향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 위에 공신전·군전 등도 점차 세습화하여 당초의 이상은 재분배 과정에서부터 여러 제약을 받았고, 더구나 오래지 않아 토지국유의 공정수조율은 사실상 허구화되는 여러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답니다..

한번 잡은 권력, 권리는 참 손에서 떼어놓고 싶지 않죠. 특히 삶이 퍽퍽할수록 더 말이죠. 사람마다 목적이야 다르겠지만 다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면 그 순수한 의미가 퇴색되지 않게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이 될 수 있게 스스로에게 엄격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그 뒤로 과전법은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시죠? 여기서부터는 이어서 나올 직전법, 관수관급제 posting에서 더 자세히 만나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 ㅎㅎㅎ 역사공돌이가 우리와 아주 친한 wiki 친구를 데려왔어요~~~ 간단한 요약이지만 이해되기 좋을거에요!!!

wiki 曰

세조 12년(1466)에 들어 종래의 세습을 일체 폐지하고 현직 관원에게만 지급하는 직전법을 실시하였다. 이 직전법은 토지를 급여받은 관원이 경작자로부터 직접 수조를 징수하게 했으나 농민에 대한 수탈이 심하여 성종 때에는 정부가 받아서 전주(田主)에게 지급하는 이른바 관수관급제(官收官給制)로 바뀌었다. 그러나 토지의 부족은 여전하여 성종 때에 직전법의 폐지가 논의되고, 명종(明宗) 때에는 직전의 지급이 불가능하게 되었으며, 임진 왜란을 거치면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과전법
⓵ 권문세족의 토지를 몰수, 관료에게 수조권을 재분배하여 관료들의 경제 자립권을 보장하고 관료 국가의 틀을 온건적으로 정비
⓶ 토지의 국유화에 따른 사전(私田)의 재분배
⓷ 수확의 5/10가 일반화되었던 수조율을 대폭 경감하여 국고와 경작자 사이에 개재하는 중간착취를 배제

여러분 어때요? 재미있으셨나요?
역사공돌이의 포스팅은 정기 세션 과 제가 흥미있어하는 역사 속의 한 부분을 가지고서 하는 스페셜 세션 으로 나뉜답니다. 곧 또 여러분께 흥미롭고 유익한 주제를 가지고 돌아올 그 날까지!!! KOSTORY, 독자 여러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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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공돌이

'No more poker face' 이제 더 이상 모르는 것을 숨기지 말자! 당당하게 역사에 대해 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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