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건국의 발판- 위화도 회군

#위화도_회군 #이성계

 

   역사를 공부 하는 굥이야. 만나서 반가워! 이번에는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려고 해! 역사에 관심이 없는 친구들도 위화도 회군은 한번쯤 들어봤을 거야. 조선의 건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되는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나는 지금부터 위화도 회군에 관련해서 간단하게 이야기 할거야.

 

 


#당시_고려의_정세

이성계&정도전, 최영

고려 말 혼란했던 틈을 타서 왜구가 자주 고려를 침입했어. 이성계는 그들을 해치우면서 권력을 쌓았어. 그 결과 개인 사병의 규모도 엄청났고 권력도 엄청났다고 해. 하지만 당시 최고의 무장이자 권력자인 최영에게 밀려 2인자를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었지. 다양한 공적들을 세웠지만 동북면 출신이었던 이성계는 중앙정치계에 발을 들이지 못했어. 출신지역 그리고 당시 뛰어난 무장이었던 최영과 이인임의 견제에 의해 중앙정치계로 나아가지 못했어. 그러나 여러 번의 전공(戰功)[1] 그리고 조반 사건[2]을 통해 우왕과 최영에게 인정을 받아 중앙 정치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어(당시의 사료를 보면 이성계에 관련된 설화가 굉장히 많아 당시의 고려 백성들은 이성계를 상당히 신격화 시켰던 것 같아). 당시에 큰 권력을 쥐지 못했던 신진 사대부들은 이성계와 손을 잡았어. 바로 정도전, 조준 등 문신으로 무신에게 밀려 권력을 잡지 못했던 자들이야.

[1] 전공(戰功):전투에서 세운 공로.

[2] 황해도 해주 인근에 조반의 농토가 있었는데 그 지역의 담당이었던 염흥방의 집안 노예 이광이 그 땅을 빼앗아 자기 마음대로 갈아엎었다. 조반이 염흠방을 찾아가 이에 대하여 이야기 하자 조반에게 땅을 돌려주었다. 11월 추수가 끝나자 이광이 다시 나타나 그 땅을 다시 빼앗으려 하자 조반은 이광의 집을 찾아가 조반을 죽이고 집에 불을 질렀다. 염흥방에게 이 소식이 전해지자 조반을 체포하였다. 이 때 왕에게 ‘조반이 반역행위를 했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이 소식이 왕에게 들어가고 왕과 최영이 조반을 처벌하기로 하였는데 이 때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이인임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일은 이성계가 중앙정치계로 진출하는데 큰 발판이 되었다.

#명나라_갑자기_요동을_요구하다!

1388년 2월 , 명의 태조가 고려에 철령 이북의 땅을 명의 영토로 하겠다는 통보를 해왔어. 이 지역은 공민왕이 반원 정책을 실시하면서 되찾았던 땅이야. 당시 고려는 이 땅을 내주는 것은 안된다고 결정을 내렸어. 그에 따라 고려는 이 통보에 대해  2가지의 입장을 취할 수 있었어.

  1. 명에 맞서 싸우는 방법
  2. 명과 외교적인 방법을 통해 해결하는 방법.

   

    명과의 직접 충돌을 결정한 최영과 우왕은 일단 랴오둥(요동)을 정벌 하려고 했어. 당시 명은 세워 진지 얼마 되지 않은 나라여서 요동을 정벌해도 관리할 수가 없었어. 따라서 최영과 우왕은 몽고지방으로 쫓겨난 원과 함께 명을 함께 공격하려고 했어(게다가 이런 결정 속에는 친명파였던 이성계와 신진 관료들의 세력을 누르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것이 학자들의 의견이야). 이러한 결정에 대해 이성계는 4불가론을 내세워 전쟁하는 것을 반대했어.

지금 군사를 출동시키는 데에는 네 가지 불가한 점이 있습니다.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거스르는 것이 첫 번째 불가한 점이고 여름철에 군사를 내는 것이 두 번째 불가한 점이며, 온 나라를 들어 멀리 정벌하면 왜구가 그 빈틈을 타고 들어올 것임이 세 번째 불가한 점이고 시기가 마침 덥고 비가 와서 활에 아교가 녹아 풀어지고 대군이 전염병에 걸릴 것임이 네 번째 불가한 점입니다.”

하지만 이성계의 반대는 무시  당했어. 결국 최영을 팔도도통사, 조민수를 좌군도통사, 이성계를 우군도통사로 한 고려의 정벌군이 4월 18일 평양을 떠나게 돼.


#이성계_위화도에서_회군을_결정하다.

출처 : http://yoosi0211.tistory.com/entry/고려의-몰락-반전-드라마-위화도-회군

   위화도 정벌군은 그해 5월 7일 압록강을 건너 위화도에 도착했어. 이성계는 위화도에서도 다시 한번 우왕에게 회군을 요청 했어. 탈영병이 많았고 압록강이 불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야. 하지만 우왕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어. 되려 환관 김완을 보내 나아갈 것을 독촉 했어. 요동 정벌에 부정적인 의견을 가진 이성계는 최영에게 5월 21일 다시 철군을 요청하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어.

   결국 이성계는 5월 22일 좌군도통사 조민수를 설득하여 회군을 시작했어. 개경에 도착한 이성계는 최영군과의 내전에서 승리한 뒤 우왕과 최영을 숙청하고 우왕의 아들(창왕)을 왕으로 옹립 했어(이성계와 회군을 주도하였던 조민수가 이성계의 세력을 꺾기 위하여 우왕의 아들을 왕으로 옹립하였다는 주장도 있어). 그 뒤로 조민수와의 정치적 경쟁에서 승리한 이성계는 공양왕으로부터 왕위를 받고 조선왕조 500년의 첫걸음을 열게 되었어.

   이렇게 조선 왕조의 시작 위화도 회군을 짧게 살펴 봤어. 당시에는 인스타 그램은 없었다는 거 알고 있지? 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친명배금 정책을 펼치고, 유교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조선! 조선왕조 500년이 이제 막 시작되었어. 앞으로 조선이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 그리고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참 궁금하지 않니? 그럼 지금부터 조선의 행보를 다 함께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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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more poker face' 이제 더 이상 모르는 것을 숨기지 말자! 당당하게 역사에 대해 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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